미래 통일의 주역, 탈북 청소년을 키워라!
3년 전, 납북된 국군포로 고 이헌우 중위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고 가슴 아픈 사연에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다. 고 이 중위의 딸 영희 씨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홀로 두만강을 넘어 한국에 왔지만 남한의 친지들이 막상 탈북 해 돌아온 딸 영희 씨를 외면하고 이미 고인이 된 이중위의 사망으로 딸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탈북 해 고국 품에 왔지만 이 곳에서 그가 느낀 자괴감과 상처는 얼마나 컸을까? 그런데 더 극적인 사연은 아버지인 고 이헌우 중위의 위패가 동작동 국립묘지에 모셔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6.25전쟁 중에 실종되었던 이헌우 중위를 남한에서는 사망한 것으로 분류하고 국립묘지에 위패만을 모셨다는 것이다. 딸은 아빠의 위패 앞에 엎드려 “기어서라도 남으로 가신다더니 유골조차 고향땅으로 못 오시나요” 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이렇듯 목숨을 걸고 탈북을 시도하는 북한 사람들은 한국에 넘어와서 푸대접을 받거나 친지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기 일쑤라고 한다.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은 남북화해니 남북 협력이니 개성공단이니 금강산 관광이니 하면서 외적인 행사와 협력은 무수히 벌리지만 실제로 같은 민족인 탈북자들을 얼마나 차별하고 외면하였는지 영희씨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전해준다.
국가 인권 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500명의 새터민들 중 67%는 자신들이 차별을 심하게 겪고 있고 취업을 해도 직장 내에서 심각한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월간중앙 보도에 의하면 탈북자들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빠져나와도 남한에서 직업을 갖기조차 힘들고 새터민들의 거의 대다수가 실업상태이며 실제 정규직으로 취업한 경우는 겨우 16.7%밖에 안 된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탈북 하는 북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마치 남한 경제가 위축되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고 그들이 일으키는 범죄행위에 유난히 과민반응을 하면서 그들의 인권과 동족으로서의 사랑을 전혀 얘기하지 않고 있다. 진정한 통일이란 무엇인가? 결국 남한사람들과 북한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생활이 아니던가?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들을 차별하면서 어찌 통일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은 북한의 유도 영웅 계순희 씨와 미녀 무용수로 애니콜 광고모델까지 되었던 조명애 씨 이야기는 관심을 가지고 대한다. 남한에서 조명애 씨를 사랑하는 팬클럽카페 회원 수만 해도 거의 2만 명에 육박하고 그가 움직이는 일거수일투족이 연예계에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것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은 이미 남과 북이 정치적인 이슈만으로 서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조명애 씨와 같은 인적인 교류도 거의 우리 생활의 일부처럼 이루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진정한 통일이란 문서를 주고받고 영토가 합병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북한 사람이 남한 사람을 받아들이고 남한사람 역시 북한사람을 차별 없이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면에서 계순희 씨나 조명애 씨는 어찌 보면 우리민족이 통일로 가기위한 조그만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유명한 북측인사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우리들의 상상이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목숨을 걸고 탈북을 한 새터민 들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과 태도는 어떠한가. 새터민들은 쉬운 일만을 하려고 하고, 북한의 체제에서 시키는 일만 했던 게으른 타성 때문에 우리들이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하는 기업가들도 많다. 또 새터민들이 이유 없이 싫고 그들 스스로가 괜히 의심을 하게 만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새터민들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우리들 내면의 현재 심리현상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상호 협력하여 발전하는 미래를 설계해 나가야 하는 것이 남과 북의 통일 과정에서의 과제라고 한다면 새터민들과 진정으로 교류를 하고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우리들의 태도로 어찌 거창한 통일만을 논할 수 있을까? 이런 거창한 통일은 결국 정치적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 이다. 정치적 통일을 넘어 남북한 사람들 간의 통합을 위해서라도 새터민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남한 내에서 동일민족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하는 것이 통일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특히 나는 탈북 청소년들이 나와 같이 대한민국의 아들, 딸로서, 단일민족의 청소년으로서 자부심을 느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흔히들 통일 보다 통일 후가 더 문제라고 한다. 왜냐하면 통일 후 서로 다른 환경, 사고방식, 문화적 차이 및 생활습관 등으로 인해 무수한 정신적인 충돌과 혼돈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통일이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통일이 되지 않는 후유증을 겪게 되는데 이 이질감을 치료하는 비용이 막대하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이러한 통일 후의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탈북 청소년들이 먼 미래 통일시, 주도적으로 화합하는 역할을 해 나가도록 우리가 미리미리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탈북 청소년들은 먼 미래 실제 남북한이 통일이 되었을 때, 이질감과 문화적인 괴리감을 극복해 나가게 할 수 있는 중요한 교류의 핵심적인 인적 네트워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흔히들 통일을 지나치게 정치 경제적으로만 접근하고 있고 이벤트성 행사위주로 통일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식량지원이니 핵문제니 평화마을이니 하면서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남북한의 인적인 소통보다 더 우선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이런 정치적인 행사도 중요하지만 남과 북의 사람과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는 내적인 교류와 의사소통, 서로에 대한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탈북 새터민들을 우리가 감싸 안기 위해서 어떠한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해야 할까?
얼마 전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중 하나인 ‘여명학교’에 관한 기사를 보고 나는 탈북 새터민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교회의 지원으로 운영하는 학교인데 24명의 탈북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6개월가량의 교육을 시켰는데 이 중 7명이 서강대, 중앙대, 외국어대, 성균관 대 등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고 한다. 노트북 한권도 없는 빈약한 시설에서 이들이 일궈낸 성과는 우리들이 새터민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되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들에게 경제적으로 일회성의 정착금을 주는 것으로는 진정한 우리 남한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게 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이 취업한다고 하더라도 북한 체제 내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컴퓨터도 못 다루고 초보적인 수준의 영어도 하지 못하며 사고방식마저도 차이가 있으니 직장에서 적응하기란 거의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물론 탈북자 교육원 ‘하나원’이 있긴 하지만 이는 획일적으로 새터민들을 위한 초기교육일 뿐이지 실제적으로 대학을 진학한다던지 취업을 분야별로 구체화시켜 교육시켜주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적어도 탈북 청소년들 만이더라도 입시위주의 우리나라 정규 교육에 획일적으로 편입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그들의 마음과 연령격차, 실력 등을 좀 더 배려하고 직업교육에 중점을 두는 대안 학교를 활성화 시켰으면 한다. 그래서 정규 교과과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수많은 탈북 청소년들에게 대안학교를 통해 검정고시 교육을 시켜주어 대학 입학을 도와주거나 아니면 컴퓨터교육을 집중적으로 시켜 정보화 사회에서 직장을 갖는데 지장이 없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나아가 대기업이 탈북 청소년들만을 위해 인턴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했으면 좋겠다. 탈북 청소년들에게도 대기업 인턴쉽을 제공하여 그들이 미래에 우리 사회의 통일의 주역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을 만들었으면 한다. 정치, 경제적인 통일을 넘어 남북 간 진정한 단일민족으로서의 사람간의 통합을 이루려면 먼저 탈북한 청소년들을 우리 품에 안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탈북 청소년 문제만은 남북관계를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관점을 버리고 먼 미래 통일의 주역을 키워 나간다는 관점에서 사랑과 인내, 교육에 대한 투자와 그들의 처지에 대한 배려를 가지고 탈북청소년들을 감싸주었으면 한다. 이것이야말로 남북한이 하나 되는 진정한 통일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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