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김풍년

학교:인천대학교

전공:미국통상

 

     

 

북한의 민주주의와 다양성의 필요성

 

  먼저, 민주주의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자. 민주주의라 함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을 뜻한다. 북한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북한은 스스로를 북조선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이름에 따라서 그 국가의 사상을 드러낼 수도 있고 그들이 목표하고자 하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민을 위한 공화국이라 칭하는 이름만으로 그들을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북한은 지금 인민을 대표해서 인민을 위한 정치를 펴고 있는가? 북한 내에서는 어떻게 여기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계적 평판으로는 독재를 위한 혹은 상류층 몇몇을 위한 국가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인가? 그들이 최초로 헌법을 만들었을 때의 생각은 인민을 생각하는 정치를 하자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접근방법이 잘못 되어 있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접근방식 때문에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왜곡되고 현재 자유주의가 공산주의를 압도한 세계상황 때문에 북한은 더욱 고립된 것이다.

  북한헌법 제 9조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모든 국가기관들은 민주주의 중앙집권제 원칙에 의하여 조직되며 운영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들은 이 원칙이 광범한 인민대중의 의사에 기초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지도기관을 선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민의 다양한 사고와 삶이 전제되어 있지 않고 그들의 의견과 이익이 용이하게 표출될 수 없는 정치구조 하에서는 민주주의란 실현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북한은 다양성을 인정해서 민주주의를 향하는 것이 그들의 노동당이 떠드는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의 반발과 남한과의 긴장상태 그리고 세계적 고립문제도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그럼 지금부터 차근차근 이것을 다루어 보겠다.

  먼저, 남북한의 헌법을 제정했을 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선택이 남북한의 지금의 모습을 어떻게 결정지었는지 알아보겠다.

  남북한 헌법 제정과정의 비교는 제정절차의 형식을 단순히 검토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헌법 제정과정에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헌법제정자들의 정치적 이해가 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헌법 제정절차는 ‘소비에트(인민위원회)의 원리’를 따랐다. 반면에 남한의 헌법 제정 절차는 의회의 원리를 따랐다. 두 헌법의 제정과정은 모두 ‘대표’의 원리, 그리고 ‘선거’에 의한 대표 선출의 방법을 따랐다. 그런데 북한의 헌법제정과정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인민의 완전한 의사 구현을 위한 ‘절차’에 강조점을 둔 반면, 헌법내용에 대한 ‘반대’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한의 경우는 절차가 국회내부에 제한되었지만, 국회의 헌법제정과정은 매우 논쟁적이었다. 

  남북한 헌법과 정치체제의 특징을 요약하면, 북한이 인민주권 절대주의의 원칙을 따른 반면, 남한은 국민주권 상대주의의 원칙을 따랐다는 점이다. 즉, 남한의 경우는 주권의 양도를 전제로, 양도된 주권이 어떻게 보호될 수 있는가를 헌법제정의 원리로 숙고한 반면, 북한은 주권의 양도불가능성을 전제로 주권 자체가 어떻게 완전히 구현될 수 있는가를 숙고했다.

  결국 북한은 법의 ‘정의 실현’과 ‘절차’를 중요하게 여기며 사회주의 하에서 법을 제정하고 민주주의를 하였고, 남한은 간단히 말해서 ‘거부’의 권한을 의회를 통해서 실현한 것이다.

  이 갈림길의 선택은 남과 북을 냉전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림길에 의한 선택과 더불어 국가의 성격을 규정짓게 되는 것이었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북한의 원칙을 고수하고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결국 다양성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남한은 자유주의의 기조와 함께 급하게 헌법을 제정하면서 원칙보다는 서로의 반대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열어 놓음으로써 결국 다양성을 인정하고 모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듦으로써 다양성의 실현을 이루었다. 이 다양성의 차이가 바로 민주주의의 차이로 이어졌다.

  따라서 북한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해야 할 것이 다양성을 키우는 것이다. 다양성이라는 것은 국민 각자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북한과 같이 중앙집권적으로 몰려있는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으며, 북한의 인민의 인권 문제와 같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북한 권력집중의 와해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가장 큰 문제점이 있는데, 독재정권하의 북한에서 어떻게 다양성을 이루어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말이 안돼 보이지만, 군사적 긴장을 조금 더 와해시키고, 우리의 국민적 노력으로 북한 인민과의 교류를 더욱 확대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다양성을 키우는 일에 왜 군사적 긴장을 와해해야 하는 것일까? 서로 ‘으르렁’ 거리는 상대가 있으면 모든 생각은 그것에 집중되며,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오래 지속시키려고 그것을 이용하게 되고 결국 다양성은 실현되기 힘들다. 그러나 일단 서로의 전쟁을 위한 기반시설의 축소는 긴장관계를 누그러뜨릴 수 있으며 그것은 국가의 모든 관심사를 군사적 대립에 쏟는 사회분위기를 사회의 다른 일에 쏟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북한의 인권의 문제라든가 자신들의 의식주 생활에 미치게 될 것이고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북한은 그들 자신에 대한 재고와 함께 더욱 발전된 국가로의 이행을 추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 연쇄적인 반응들은 결국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데 그것의 시작은 군사적 긴장을 와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가능한 것이다.

  군사력은 국가의 능력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미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1등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2~10등까지의 군사력을 합한 것보다 많은 투자와 군사력을 겸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남북은 군사력을 줄여 긴장상태를 와해할 수 있을까? 양국은 서로를 자신의 논리와 정치철학으로 설득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려고 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화해라는 것을 간단하게 표현해서 악수라고 가정한다면, 누군가는 마음을 열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서로 총을 들고 서있는 남북한 사람을 생각해 본다면, 누군가는 총을 내려놓고 손을 먼저 내밀어야 한다. 그것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서로 더 좋은 총을 가졌으니까 상대방이 항복하라는 방식은 사람의 이치상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치상 더 힘이 있는 사람이 먼저 총을 내려놓고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관용이고 베푸는 것이다. 지금 한국도 기득권층의 특권을 위해서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군사력을 줄이고 긴장관계를 와해하는 일이 북한의 남침을 돕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관심 속에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물론 모든 국가들이 국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하지만, 역사적 경험상 약자를 생각하는 측은지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간디는 비폭력주의로 세상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것처럼, 남한이 먼저 군비를 축소하고 북한의 군비축소를 종용함으로써 평화적 통일의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북한 내에서의 군비축소로 인한 연쇄작용으로 그들의 민주주의를 기대해 볼만 하다.

  또 하나의 접근방법은 국민적 노력으로 인민과의 접촉을 늘리고 서로를 점점 알아가는 것이다. 세계에는 많은 국가들이 있고 각기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서로 교류함으로써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보게 되고 서로가 발전하는 일이 된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고립되어 있으며 그로인해 자신들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들고 차단되어 있는 미디어로 인해 그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다양성을 이루려면 작은 노력이라도 자신의 삶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며, 그 가장 좋은 방법이 같은 말을 사용하는 남한 사람들과의 교류일 것이다. 경제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매우 긍정적인 상황이기는 하지만, 문화적 교류와 뿌리까지 깊숙한 교류까지 이루어지려면 남한 사람들의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처음이라는 것은 힘든 것이다. 북한 사람들에게 정치적 색깔 없이 단지 그들의 다양성을 위해서 만난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힘든 일이 것이며, 양국 정치계에서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손발을 놓고 있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없다. 내가 먼저 나서고 작은 일이라도 노력하여 접촉하려고 시도한다면, 작은 물방울의 계속된 낙수는 돌도 뚫듯이 북한의 인민과 남한의 국민의 만남은 자연스레 성사될 것이며 그것이 북한인민들의 다양성을 늘리는 일이 되고 결국 그 다양성의 발현으로 북한에서의 민주주의를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써는 꿈만 같은 일이지만 꿈도 자주 꾸다보면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사소한 노력이라도 북한의 다양성을 위해 우리들이 아이디어를 더 낸다면 우리의 마음이 그들에게 닿을 것이며, 다양성을 이루어 민주주의가 확립된 북한을 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남북한이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되어 세계에 그 우수성을 떨치고 분단국가가 아닌 아름답고 강하며 인자한 국가로 알려질 날도 곧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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