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고려대학교  정보통계학과

 

 

북한의 닫힌 문을 두드려야 할 비정부기구(NGO)

 

지금 세계는 역사의 어느 시점에 서있는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체제가 붕괴되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극단적 이념대립이 중심이 되던 냉전은 끝이 났다고 대다수의 세계인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탈 냉전기 시작에 대한 확신과 함께 9.11테러 이후 미국의 부시 행정부에 의해 주도된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ism)"이 시작된 순간을 두 번째 탈 냉전기(post-post-Cold War)의 시발점으로 여겨야 할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지 모른다. 이에 대하여 과연 한반도 역사의 시계는 세계 역사의 그것과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남한은 북한의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고려할 때, 한반도는 세계와 전혀 다른 역사의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세계가 평화와 협력의 중요성을 외치며 좀 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반해 한반도의 경우 남북 간의 갈등과 긴장으로 과거의 모습으로 정체되어 있기에 상대적으로 상당히 퇴보하고 있는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위와 같은 결과를 낳은 북한사회 구조의 병폐를 남의 문제로 맡겨둘 수 없으며 그것을 치유할 지혜를 모색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

북한체제에 큰 영향을 끼쳤던 소련이 붕괴하고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전환을 하는 1980년대 후반의 탈 냉전기, 1994년 길일성의 사망, 1990년대 중후반 대홍수와 지독한 가뭄으로 아사자들의 속출, 외부와의 단절로 오랫동안 지속된 경제상황 악화 등과 같은 기존의 북한체제를 전복시킬만한 여러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체제는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1997년 북한 내 권력 서열 24위로 김일성 주체사상 완성자인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의 망명은 북한체제의 붕괴 조짐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북한체제는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 체제 전환 위협을 수차례 견뎌내게 한 북한체제의 안정요인은 역설적으로 북한사회 구조의 문제점이라 볼 수 있으며 불안정요인은 북한체제를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하는데 의미 있는 실마리를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외정책 결정과정 및 체제 내부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우선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의 팽창주의의 동일한 영향권 내에 있었던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전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북한 사회와 체제변화를 도모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탈냉전과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는 소련의 고르바초프 등장으로 인한 개혁·개방정책의 추진과 동유럽에 대한 영향력 행사 포기를 계기로 폴란드, 헝가리, 동독에 이어 다른 국가들로 확산을 거쳐 루마니아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들 국가의 사회주의 체제붕괴 유형, 경제개혁 방식, 체제붕괴 후 민주화 수준 등에 대한 전반적인 특징을 통해 북한의 체제 변화 가능성과 그것을 실현할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 체제 확립과 해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소련의 체제붕괴, 공산정권과 시민혁명세력 간의 타협을 이룬 폴란드, 집권세력의 자발적 개혁의 헝가리, 급진적 개혁 후 서독과 흡수 통일한 동독, 선진적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루마니아로 각 국가들의 체제전환의 핵심을 나타낼 수 있다.

국가별로 자세히 언급하면, 먼저 소련연방은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 지배 엘리트의 경제적 안정의 비대칭으로 두 엘리트 집단이 분열하여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였다. 폴란드는 1980년대 들어 경제피폐로 급부상한 시민 세력의 성장이 체제 붕괴의 주요 원인이었다. 헝가리의 사회주의 체제전환은 이전의 상당한 경제개혁을 경험한 상태에서 소련의 동유럽 불개입정책,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헝가리 내 저항세력의 점진적 증가 및 공산당 내의 비교적 젊은 당료들로 구성된 개혁파 등장으로 이루어졌다. 동독의 경우는 인접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추진한 민주화 개혁정책으로 동유럽 정치상황이 급격히 변화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반체제 의식은 강해졌고, 이것이 사회주의 체제 붕괴의 발단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루마니아 사회주의 체제 붕괴는 지도자의 족벌, 강압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만에서 비롯된 국민들의 유혈시위와 소수민족에 대한 개혁 요구에 의한 결과였다.

학계의 연구에 의하면,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를 다음과 같은 큰 틀로 정리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 사회주의 체제로부터 비롯된 정치적 경직을 초래하는 일당제와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이 가져온 1980년대의 장기 경제악화는 공산당 내부의 개혁파 등장 또는 민중들에 의한 반정부 세력의 결집을 이끌었다. 둘째, 반정부세력은 기존 국가체제에 대한 요구사항을 구체화하고, 이에 정부는 그들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거나 국가에 따라 반정부세력을 강하게 탄압하는 과정을 보인다. 셋째, 계속되는 반정부세력과 공산당 보수파의 대립은 물리적 충돌 또는 협상 등을 통해 변화를 시도한다. 넷째, 당시의 정치, 경제, 국제적 상황들로 반정부세력의 주장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 되어, 반정부세력에 의해 공산계에서 비공산계로의 권력이동이 결국 체제전환을 일으키게 된다.

이와 같은 일련의 단계들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전환 과정에서 겪는 일반적인 흐름이지만, 각 국가의 특수성으로 각 단계 수행 강도의 차이를 보이며 이것이 결국 국가 간 체제전환의 차이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첫 번째 단계인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민중으로 구성된 반체제세력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또는 공산당 내의 개혁파 세력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체제붕괴를 이끄는 다음 단계로의 이동은 일어날 수 없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북한사회 구조의 문제점: 김정일 독재정권과 폐쇄성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전환의 일반적인 과정을 북한의 경우에 적용할 때 체제전환을 위한 첫 번째 단계의 움직임이 매우 미약하다는 점에서 북한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관찰할 수 있다. 현재 북한체제의 안정요인은 북한 국내외의 어떤 사건도 그들만의 논리로 정당화시키고 해결할 수 있는 김정일의 강력한 리더십과 외부세상과의 단절로 인한 북한사회의 폐쇄성이다. 종교에 비유될 정도로 절대적인 정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반체제세력의 형성은 매우 냉혹하게 처리되기에 체제전복을 일으킬 만한 세력의 성장은 어려운 것이다. 또한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외부세계와의 교류는 대중이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갖도록 유발하는 가장 확실한 요소였다. 하지만 그나마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교류마저 탈냉전 후 대부분 중단된 현실과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라고는 중국과 남한이 전부인 북한의 지리적 위치를 고려할 때 북한체제의 모순이 북한 내부에 알려져 힘 있는 반체제세력이 결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자유민주주의 관점에서 김정일의 견고한 지도력과 북한의 폐쇄성이 북한사회 구조의 문제점인 것이다.

북한체제를 지속시키는 안정요인과 함께 존재하는 불안정요인은 북한사회 구조의 변화를 기대하는 우리에게 약간의 희망이 될 것이다. 북한체제를 불안정하게 하는 것은 앞서 제시된 두 개의 안정요인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의 강력한 리더십은 최근 여러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김정일 와병설로 과거에 비해 상당히 약화된 상태인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김정일의 3남 김정운이 후계자로 지명되고는 있지만, 지도자로서 그의 능력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 외에 김정일을 대체할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북한체제를 흔들리게 하는 변수이다. 또한, 현재 지배 세력들이 상당히 노쇠했음을 고려할 때 헝가리의 경우와 같이 젊은 관료들이 집권하여 개혁 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다볼 수 있다. 그리고 김정일 정권의 억압정치도 계속되는 경제난으로 인해 2000년대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탈북자들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을 보면 북한체제의 첫 번째 안정요인인 현 정권의 약화가 북한대중의 움직임과 북한체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북한사회가 폐쇄적 상태를 변화시킬 잠재력을 장기간 보유해온 점이다. 북한의 현 경제 상황은 붕괴 당시 소련, 동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도 매우 피폐한 상황이고, 이것이 북한 주민들의 힘든 생활을 초래한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북핵 문제를 계기로 외부 세계와의 적대적 관계로 북한에 대한 적극적 해외원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시점에서 주민들의 삶의 수준이 과거의 처참했던 수준과 비교했을 때 가시적인 향상을 이루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첫 번째 단계인 반체제세력의 형성을 위한 유인을 북한사회가 오랜 기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만약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이 북한의 개방·개혁정책을 이끈다면 북한체제의 두 번째 안정요인, 즉 폐쇄성은 매우 빠른 속도로 감소할 것이고 지금과 같은 집권세력에 대한 북한 내부의 무조건적인 신봉 또한 약화되어 북한체제를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김일성에 이은 김정일 독재정권과 폐쇄성은 모순투성이인 북한체제를 지금까지 유지시켜 왔다. 바깥세상과 통하는 문을 걸어 잠근 공간에서 한명의 절대자가 군림하는 인류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북한의 기이한 사회구조는 그것을 지탱해온 두 기둥이 조금씩 흔들리며 변화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가장 확실한 열쇠를 가진 비정부기구(NGO)

이렇게 북한이 체제를 전환시킬 불안정요인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그것이 더욱 악화되어 북한 스스로 변화하도록 마냥 손을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비정부기구(NGO)라는 신 국제질서의 젊은 행위자가 가진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대단히 경직된 방식으로 국제사회의 문제아로 여겨지는 북한을 대해왔다. 한반도에 이해가 얽혀있는 강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그들 사이에서 객관적,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힘든 남한에 의해 북한과 관련된 문제들이 논의되어 온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오히려 북한이 김정일을 중심으로 문을 더 꼭 걸어 잠그고 불량한 사건들을 저지르도록 하는 여건 또는 분위기를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민감한 국제적 사안들이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국가들 때문에 교착상태에 이르러 해결되지 못하거나 몇몇 힘 있는 국가들의 독단에 의해 부자연스럽게 처리되었지만 최근 들어 비정부기구의 활발한 활동으로 그러한 모습들이 상당히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특정 국제 문제에 접근할 때 정확성, 안정성, 책임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외부의 변화에 능동적이고 신속한 반응을 하지 못하는 정부조직이 가진 한계를 보완하며 비정부기구는 좀 더 유연하고 자발적으로 사안에 다가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몇몇 국가들에 직접적인 압력을 가하거나 인터넷, 언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유명인들과 함께 여론을 형성해 간접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이 비정부기구의 움직임이 가진 두드러진 양상이다.

비정부기구의 유의성은 최근 몇몇 사건에서 여실히 관찰할 수 있다. 캐나다가 주도권을 가지고 관련국들을 설득하는 동안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Spencer Diana) 등 유명인사와 함께 대인지뢰 사용금지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데 비정부기구는 큰 역할을 담당했다. 21세기 최초의 신생국가 동티모르 탄생과정에서 인도네시아라는 잠재적 강국의 눈치를 보며 동티모르 인권유린을 모른 척 하는 국가들과는 달리 언론과 함께 세상에 실상을 적극적으로 알린 것도 비정부기구였다. 북한 유학생 남편과 생이별한 뒤 47년간 독일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살아온 체나테 홍 할머니는 최근 평양을 방문해 남편과 극적으로 재회하였다.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의 실현에도 독일 외무부와 협력한 비정부기구 국제적십자의 활발한 외교적 노력이 있었다. 비정부기구는 오늘날 여러 종류의 국제 이슈를 해결하는 무대에서 비록 주연은 아닐지라도 능력 있는 조연으로서 연극의 성패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비정부기구는 북한의 인권, 농업, 교육, 보건의료, 환경 등과 같이 다양한 분야의 문제에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들이 정치체제의 전환과 같은 거대한 변화를 단기간에 이끌어 내기는 힘들겠지만, 북한주민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분야에 지속적으로 접촉하여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각 분야의 자립능력을 향상시켜 나간다면 현 북한사회 구조의 문제에 대항할만한 북한 내부 세력의 형성 또는 움직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북한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방안이 될 수 있지만 그러한 정부 대 정부의 접근방법은 지금껏 꾸준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도록 이끄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제는 위에서 아래로 변화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아래에서 위의 방향으로 북한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 비정부기구는 구체적으로 각자의 대북지원 전문성과 교섭력을 제고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비정부기구 간 협력을 통해 북한사회의 병폐를 가려둔 많은 문을 가능한 동시에 열어야 한다.

더불어 정부차원에서 대북지원 비정부기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도 있다. 대북지원 사업을 처음에 추진하였을 때 보다는 훨씬 성장했지만 대북지원 비정부기구에 대한 정부 지원체제의 투명성, 공정성, 합리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다. 대북지원 비정부기구의 효율적 관리와 지원을 위해 관련 규정의 명확화, 제도 실행 및 운영의 엄격함, 성과에 대한 냉정하고 비판적인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냉전의 유물이 현재의 한반도 상황과 북한의 모습 및 행태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 국제질서에서 여전히 우리는 과거에 취했던 국제문제 접근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민·관의 체계적 협력관계 정립으로 북한의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북한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뿌리내리는 기반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한반도 역사의 시계를 세계의 그것과 같은 시각으로 맞추고 국제사회에 우뚝 서는 진정한 하나의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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