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북한 인권문제 우리가 외면 할 수 있는가

   

   제목  : 소소한 점 하나의 목소리



 북한은 국가 전체를 어우르는 정체, 사회 ,경제적 측면 모두에서 ‘사회주의’를 관철시킨다는 뚜렷한 명목 아래 매우 강한 고립과 폐쇄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체제와 성격은 그곳에서 발생하는 전반적인 문제들을 걸러내는 하나의 거대한 필터가 되어 스스로의 팔과다리에 족쇄를 채우는 모순적 역행이 반복 되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나타난 경제, 식량난으로 인한 북한의 요청에 국제사회는 말미암아 검고 어두운 방 한 켠 의 구석일지 모르는 곳에 희미한 등불을 마련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등불이 보여 준건 정부의 묵살과 더불어 적극적 가담에 의해 쓰러져가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인권이라는 천부적 권리의 상실은 보편적 규범을 넘어선 생존권과 결부되는 현실적 삶의 참혹함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편적 규범과 대립적 관계로 있는 북한의 인권에는 여러 가지 모순된 이념과 실질적 세력의 자위적 욕심이 뒤엉켜 그들만의 체제에 남아있는 그들만의 보편적 규범의 모습으로 형용되고 있다. 이러한 인권의 변질은 반드시 제 모습으로 돌아와야 하며 그러기 위한 노력이 계속적으로 이루어 져야만 할 것 이다. 

  

 

 북한 인권의 특징은 첫째로 체계의 확고한 고립성과 폐쇄성에 기인한 뚜렷한 대립적 자세로 들 수 있다.

 국제사회는 80여개의 국제인권 규범과 130여개 이상의 국가들이 유엔 국제 인권규약에 가입되어 있다. 이 같은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인권 문제는 보편적 인정성과 규범을 획득하며 선택적 조건이 아닌 필수적 요소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물론 다양화 되고 세분화된 이념과 관념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는 사회에서 어느 한 쪽이 내세우는 도덕적 사고가 절대적 일 수 는 없다.

 하지만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적 사고 가 아닌 보편적인 규범에 입각한 국제사회의 인권의식은 인간존중 이라는 최소한의 도덕적 의식으로서 성립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은 그들에게 있어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문화상대주의의 일환으로 판단될 뿐이다. 이러한 사고는 북한체계가 갖는 고립성과 폐쇄성에 맞물려 체제붕괴의 수단이나 주권침해를 가져오는 대립적 관계의 구축은 물론 스스로가 주장하는 모순된 ‘자주적 인권’ 에 힘을 실어주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다. 

 

 

 둘째로 북한의 대내, 대외적 관계의 짙은 정치, 안보적 연결성과 관련이 있다.

 북한 인권 주체는 집단적 성격을 가지는 사회의 큰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 철저히 개인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사회주의’라는 체제를 관철시키는 가장 효과적 방법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임을 표방한다. 이러한 이념적 사고와 관련된 방법들은 통치부가 갖는 체제의 사상과 안보적 측면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방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가와의 동북아시아 안보체계와 갖는 밀접한 관계와 미국과의 정치적 외교적 문제에도 이런 연결성은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중시되는 핵 보유 국가라는 현실적 상황과 이에 따른 군사적 도발 위험성 내포 등의 문제로 오히려 더욱더 선순위에서 인식 되어야 할 인권문제는 정치논리와 정치적 고려라는 명목 하에 뒷전으로 유보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쥐고 있는 하나의 방법적 열쇠로 이용하는 북한의 외교정책은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피폐하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로 우리정부의 소극적, 간접적 태도와 치우쳐진 동포애와 인도주의 역시 인권 변질의 한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우리정부의 북한인권 관련 태도의 요약은 의식적 거대함에 갇혀버린 실천적 약소함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처음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에 공론화 될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우리는 국제 비정부 기구와 유엔이 중심을 이루는 대처방안에 단지 협력자로서의 역할에만 치중하고 있을 뿐이다.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여건조성과 그에 따른 주민스스로의 시민의식 함양이라는 주장은 주체사상 이라는 최악의 비주체적, 지배통념적인 사상에 묶여 있는 주민들의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는 인권 문제에 대한 적극적, 직접적 개입은 군사적, 안보적 측면에서 심각한 교착상태를 가지고 올 줄 모른다는 불안감에 북한 주민들을 유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군사적, 안보적 측면을 하나의 이용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태도는 그들에게 있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는 좋은 흐름일 뿐이다.

 모든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나 모순 적인 태도도 우리는 동포애와 인도주의라는 깊은 박애 적 의식을 갖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 물론 그것이 갖는 의미와 또 그에 따른 행동이 결코 잘못돼 있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상이나 의식체계를 말하는 입장에서 주관적 입장이 아닌 객관적 입장을 갖자는 것도 어쩌면 꽤나 역행적인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지나친 동포애로 ‘인권’ 이라는 보편적인 최소한의 도덕적 규범을 누려야하는 북한주민들을 잘 못 바라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분명 가장 비주체적인 북한사회에서 탈피해야 하지만 그것은 동포애와 인도주의 이전의 ‘인권’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북한 인권의 왜곡을 되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만 한다. 기본적 권리마저 사라져 버린 주민들을 위해서 삶으로서의 가치를 주기 위해서 그들의 편에 서서 통치세력의 만행과 악행을 중단 시켜야 한다.


 

 첫째로 구체적인 범위 안에서의 새로운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인권이 내세우는 도덕적 규범과의 충돌은 북한이 처음은 아니다. 신생 혹은 독립국가들 에게 있어 때때로 이것은 마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시작과 같은 현실성이 결여된 이념에 불과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 충돌성은 정치, 시민적 인권에 비중이 가해지는 한편과 경제적 인권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상반된 생각에서 기인 한다. 게다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일체 부정하는 고립성과 폐쇄성의 북한사회에 비추어 보면 더욱더 비현실적인 외침에 불과 할지 모른다.

 또한 북한 통치세력은 국제사회를 대립적 관계의 적으로 간주하며 북한의 현실적 어려움의 책임을 외세라는 명목으로 전가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반외세로서 주민들에게 선전하였고 체제결속력 강화라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그렇기에 북한과의 역사적 관련성 사회의 이해성 명분의 당위성을 갖는 일본, 러시아, 중국 등의 동북아시아 내에서의 국제사회규범의 역할과 수행자로서의 힘을 갖는 단체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단순한 외세로서의 배격대상일 수 없으며 통치세력이 행한 권력 남용의 한계점을 끌어 내릴 수 있는 대상으로서 존재의 유무는 큰 차이를 보일 것 이다. 또한 유기적인 연결성에 따른 접근의 용이함을 바탕으로 현실적 대안에 대한 움직임도 마찰을 줄이고 좀 더 자유로운 전달이 가능 할 것 이다.

 마지막으로 국제 비정부 기구나 유엔과 같이 서로의 유기적 관계를 확인하며 국제사회에 문제제기를 통한 동의와 답을 구해 북한에 전달하는 형식이 아닌 북한에 문제제기를 통한 동의와 답을 얻어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전달 방식이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도 수행 할 수 있다.

  

 

 둘째로 정치적 안보적 성향을 배제하는 것이다.

 유엔 총회의 인권 결의안 채택은 북한에게 인권적 압박 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제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정치, 안보적인 이유가 존재 하지 않고 단지 인권이라는 전제 조건 하나로 행하는 국제사회의 의지였다. 물론 인권 결의안은 실정법 수준의 강제성과 구속력은 가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 인권에 대한 지속적인 조치가 가능하며 그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실제적으로 가능하다.

 또한 국제 인권 규약을 관장하는 규약위원회는 정치적 성향을 배제하고 국가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인권문제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북한의 협조적 자세를 구해냈었다. 그들은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결의한 채택이라는 선택적 상황이 존재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도 있다는 점, 그로인한 실질적인 이익을 창출 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 수용을 해왔다. 물론 이러한 수용적 자세가 인권개선을 위한 적극적 변화로 보기에는 어렵지만 자체적으로 인권관련 법규를 정하는 등 일정부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떠한 정치적 관념이나 이익에 대한 성격을 제외 한 채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도덕적 규범에 의한 접근은 분명 계속적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핵과 관련된 군사적 안보적 문제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새로운 문제로서 부각시키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 정부는 적극성과 중심점으로 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의 북한 인권 해결의 구호는 포괄적 개념으로서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현실적 개선여지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국제사회와 계속적인 협력을 한 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행동에는 실질적인 해법에서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 하지 않았다. 가장 주체적 성격을 가져야 하는 우리정부가 국제사회와의 협력이라는 피동적인 상황을 기본 골자로 하는 것은 모순적 행동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북한 인권관련 소식은 간간히 나타나는 관련 뉴스와 탈북인 들의 증언 또한 인권운동 비정규 단체와 혹은 개인적인 행동에 의해 폭로되는 일들만이 우리가 접하는 것들이다. 물론 기회는 적지만 대중매체의 많은 발달과 천부적 권리이며 보편적 가치인 ‘인권’ 관련 소식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방법에는 그것이 절대적인 사실에 기반 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하여도 한계점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비정부적 존재들의 외침을 연결고리로서 실질적인 해법이 제시 가능하며 국제적 인정성이라는 당위성 또한 획득한다는 점을 골자로 정부차원의 북한 인권의회와 같은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

 주체적, 적극적 방편은 우리정부가 갖는 의지가 결코 동포애와 인도주의 차원이 아닌 국제사회의 도덕적 규범이라는 것을 명확히 할 수 있는 해법으로도 관철될 수 있다. 빈번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구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치 부 스스로의 자존심에 매달리는 그들에게 있어 이러한 국제사회의 인정성은 우리나라가 갖는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북한주민들의 편에 서서 진정으로 인권을 논할 수 있는 일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엘리비젤은 유엔 경제사회 위원회에서 “세계 시민들은 자유를 갖지 못한 자들을 위해 싸울 의무가 있다. 북한 주민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세계가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라는 말을 했다. 인권 문제는 누군가의 선택적 사항이 아닌 누구나 선택해야 할 의무적 이념인 것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통제와 억압 강압적 회유 등의 통제 수단의 일환으로 묵살되어 왔다. 특히 소위 동요, 적대 계층이라 불리는 상대적 약자계층 에게 있어서는 ‘생존권’ 과 결부되는 중요한 사항이며 그 현실은 우리의 일반적 도덕적 차원을 넘어선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제적 혹은 정부차원에 큰 틀로서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큰 틀 로 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작은 점들이 필요하고 그 점들의 필요성은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중요성을 하나하나 내포하고 있다. 많은 시민단체와 개인의 소소한 행동의 연결고리가 없다면 불가능 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작은 움직임이 모여서 커다란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 될 수 있으며 좀 더 많은 활동과 교육을 통해 더욱더 많은 사회적인 동의를 얻고 인식의 변화를 갖게 한다면 점들이 모여지는 시간도 연결고리가 단단해 지는 과정도 짧아 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