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경서중학교, 강서지구별대회, 강서교육청대회에 나가서 발표한 글입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3년 전에 저는 제 인생에서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의 모든것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를 새터민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정말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를 따라 남조선에 오게 되었습니다.
중국과 몽골을 거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한국에 왔습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야 남조선을 한국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8년간 배운 것들이 온통 거짓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남조선에는 불쌍하고 가엾은 사람들만 있고, 돈이 없으면
학교근처도 못가고 쫓겨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고 저는 15살까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남다른 교육열을 가지신 부모님 덕분에 1년 365일 결석 한번 하는 일 없이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저를 따라다니는 새터민이라는 말이 낯설기도 하고 소외감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기도 하였습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것 같았고, 구경거리가 된것같아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였습니다.
학교생활중에서 가장 힘들었던것은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울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생김새도, 쓰는 말도 같았지만 생각은 너무나도 다른 철저한 이방인 이었습니다.
이제 3년이 지나고, 친구들과 같이 웃고 떠들며 점심을 먹을정도로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습니다.
이번 중간고사에서는 95점이 넘는 성적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웠습니다. 학교 선생님들과 주변 어른들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 덕분에 자신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3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전혀 다른 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마음 한 켠이 무겁습니다.
웃을 때도,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100% 행복하지도 맛있지도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잘 먹고 잘 살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저는 지금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그것은 15년동안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 아버지와 동생을 북한에 두고 왔기 때문입니다.
폐결핵으로 점점 쇠약해지는 어머니와 제가 먼저나오고 뒤따라 아버지와 동생이 나오기로 했는데 아버지와 동생은 중국까지 왔다가 다시 북한으로 끌려 갔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아버지와 동생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영원히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무너질 듯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고 난 뒤에야 내일 죽더라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북한에서 식량난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말이 들릴 때마다 감옥에 계시다는 아버지와 북한땅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는 동생의 까칠한 얼굴이 떠올라 견디기가 힘듭니다.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가족들과 다시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성공해서 아버지와 동생에게 많은 것들을 주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통일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이 점차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통일에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통일 후에 일어날 혼란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도 합니다.
통일의 가장 큰 적은 무관심입니다.
남한과 북한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통일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핏줄에 대한 끈끈함도 줄어 들고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든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은 빨리 이루어 져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였습니다.
같은 핏줄과 역사와 문화를 나눈 한 민족이였습니다.
저를 보십시오.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주변의 따뜻한 도움과 저의 노력으로 오늘 이 자리에까지 서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모두가 통일이 나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통일은 앞당겨질 것입니다.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된 것은 우리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복잡한 정치적인 문제는 잘 모릅니다.
다만 북에 있는 저의 가족들과 만나고 싶을뿐입니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분단국가 가 아니었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헤여져서 슬퍼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 사람, 남한 사람이라는 말과 새터민이라는 말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생사를 걸고 탈출을 해야 하는 아픔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순간도 아버지와 동생이 너무나도 보고싶습니다.
여러분!
제 가슴 속 깊은 곳에 흐르는 저의 뜨거운 눈물을 기억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