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그 가능성


 분단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남과 북은 통일을 원했고 또 노력했다. 최근에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이 터지면서 분단의 아픔이 더 실감나게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 앞으로 이루어질 가능성도 요원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에 기초하면 한반도의 분단의 시작은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되기 이전이었다. 1945년 2월 열린 얄타회담에서 미국은 소련이 대일전쟁에 참전하는 대가로 일본의 식민지에 대한 분할 점령을 약속했다. 얄타회담 결과만 놓고 보면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다시 미국과 소련의 식민지로 분할되었을 뿐이다.

 2차 대전의 끝나고 나서 미국과 소련의 대립 즉 냉전이 시작되면서 식민지운영의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본격적인 이데올로기 경쟁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소련은 과거보다는 진보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한반도에서도 점령군으로부터 해방군으로 이미지 변신이 필요했다. 남과 북에 자신들의 명분과 우월성을 증명해줄 괴뢰 정권이 필요했다. 그 결과 남과 북은 두 개의 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분단의 원인은 미국과 소련에 있었지만 분단의 고착은 한반도 내부에 그 원인이 있다. 6.25전쟁 이전까지 한반도 주민들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직 이데올로기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김일성이 6.25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통일에 대한 인식과 접근이 유연할 수 있었다.

 6.25전쟁의 가장 큰 피해는 눈의 보이는 것들에 대한 파괴가 아니다. 전쟁동안 지속된 서로에 대한 학살과 그로 인해 가슴 깊이 새겨진 마음의 상처이다. 전쟁이라는 수단은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서로에게 용서할 수 없는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3년간의 전쟁을 치르면서 남북한 주민들의 의식 속에 평화적 통일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되었다. 서로에게 심판의 대상이고 점령의 대상이 되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남북한 주민들은 평화통일의 가능성을 의식하게 되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사회주류를 이루고 있던 1980년대까지 평화통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아직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는 남아있다. 그로인해서 통일에 대한 입장과 방도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통일에 성공한 사례들은 많다. 그 하나하나의 사례마다 나름의 조건과 환경이 다르고 방식도 달라서 우리 현실에 적용할만한 것들이 많지 않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통일에 성공한 사례들을 통해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부분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통일에 성공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독일, 베트남, 오스트리아, 예멘, 중국 등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1945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에 분할 점령되었다. 그러나 10년 만에 다시 통일에 성공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이데올로기를 배제하고 중립적인 국가로써 통일에 성공했다. 내부적으로 주민들 간의 갈등이 지속되긴 했지만 민주적인 정부운영과 합리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이를 극복했다. 오스트리아의 통일은 모범적인 사례에 해당된다.

 독일의 경우는 한반도 상황과 매우 비슷한 규모와 배경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들은 동족상잔이라는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1949년 분단이 시작되고 나서 1960년까지 300만 명의 동독주민들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1990년 통일되기까지 엄청난 주민들이 서독으로 이주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질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후 동독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을 안고 있다. 또 막대한 동독주민들에 대한 복지혜택으로 서독주민들도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다. 서로가 원했던 통일이었지만 지금은 서로가 불편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예멘은 1967년 남부예멘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이 철수하면서 발생되었다. 통일을 위한 18년간의 협상을 통해서 평화통일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통일이후에 이념 대립으로 내전까지 치렀지만 북예멘의 승리로 통일국가로 남게 되었다. 예멘은 비례대표제로 공정한 권력배분으로 통일국가를 건설했지만 내전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다.

 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공산화가 이루어진 케이스이다. 베트남의 통일을 보면서 우리는 통일 그 자체가 명분이 될 수 없고 무력통일의 피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통일은 이루어졌지만 북베트남 주민들이나 남베트남 주민 모두가 통일이전보다 삶이 질이 좋아졌다고 할 수 없다.

 중국의 경우도 통일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 홍콩은 1841년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패전하면서 영국의 식민지로 떨어져 나갔다. 1898년 다시 99년 임대차 조약을 체결하면서 1997년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중국 대륙과는 전혀 다른 체제에서 100년 이상을 분리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홍콩의 반환도 분단된 영토의 통일로 평가되고 있다. 홍콩은 영토적으로 정치적으로 중국에 귀속되었지만 완전한 자치를 지속하고 있다. 홍콩이 오래 동안 자치제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60년대에는 막연히 '연방제'를 주장하다가, 1973년 '고려연방제'로 바꾼 뒤, 1980년 10월 10일 노동당 제6차대회에서 '민주'라는 수식어를 덧붙여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내놓은 이래 현재까지 이 방안을 고수하고 있다. 즉, 1970년대까지는 '통일에 이르는 과도적 조치로서의 연방'을 주장하였으나, 이후에는 '통일의 완결 형태인 연방제'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1980년 10월에 행한 김일성(金日成)의 연설 가운데 '북과 남이 서로 상대방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위에 민족통일정부를 세우고, 이를 기초로 북과 남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연방공화국을 수립 한다'는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한편 조선노동당 규약을 살펴보면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조선로동당은 조국의 자주평화통일 로선을 관철하며,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인 미제국주의자들을 남조선에서 몰아내며, 일본 군국주의를 반대하며, 지주, 매판자본가, 반동 관료배들의 괴뢰정권을 타도하고 정권을 쟁취하려는 남조선 인민들의 반미, 반괴뢰투쟁을 적극 지지 성원하며, 남조선혁명의 완성을 위하여 투쟁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도 수정되지 않고 있으며 북한주민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주요 통일관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통일에는 정치적 영토적 통일(geo-political unification)이다. 보편적인 개념이고 통일의 기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통일은 사람의 통일(unification of human)이다. 영토적 통일은 힘의 경쟁이다. 힘의 경쟁은 끝났다. 한국은 북한을 점령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해서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통일 그 자체가 그 어떤 정당성이나 명분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정복을 통한 통일은 상대의 힘이 다하는 시점에 다시 분리될 수밖에 없다. 힘에 의한 통일은 중세 이전에나 가능했다. 근대 이후로 정복을 통한 통일에 성공한 국가는 없다.

 통일은 사람들과의 통일이다. 남한 주민들과 북한 주민들이 서로 동등하다고 인정하고 대접해 줄때 통일이 이루어 졌다고 선언할 수 있다. 통일은 남과 북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 실질적인 통일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에 기초해서 통일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평화적이고 자주적인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원칙은 불변의 진리이다. 문제는 남과 북이 원칙에 충실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을 구제할 능력이 없다. 요즘 한국정부가 인식한 문제 중에 하나가 북한주민들을 구제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도착한 1만의 탈북자들에 대한 복지도 한국 정부는 감당할 수 없다. 북한의 2천만 주민들을 한국 국민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한국 정부나 국민들이 북한정권의 교체에 직접 개입하기는 힘들다. 북한의 정권은 북한주민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북한의 정권교체가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가능하다. 현재 북한의 경제는 북한정권이 소비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북한 주민들은 이미 1990년대에 북한정권의 유지비용을 지불하기를 거부했다. 북한정권이 외부세계와 협상해서 얻고 싶은 것은 정권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이다.

 한국은 현 북한정권과 협상하지 않고 퍼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생존가능하다. 한국은 남북한의 긴장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약간의 무력충돌을 있겠지만 전면전을 도발할 정도로 북한정권이 어리석지는 않다. 만약 북한이 전면전을 도발하면 북한정권은 ‘3일천하’로 끝나지만 지금 이대로 참고 견디면 10~20년은 장수할 수 있다.

 통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반도 분단은 냉전구도 속에서 시작되고 고착화 되었다. 냉전이 종식된 마당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해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한반도 통일이 주변 강대국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오스트리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소신 있고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북한정권은 공산주의라고 하는 역사적 실험에서 그 모순됨을 잘 보여주었다. 이제 더는 살아남을 명분도 없고 이미 그 운을 다하였다. 북한주민들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북한주민들의 불복종운동은 시작 된지 오래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서로 이웃이 되고 가족이 되는 실험도 시작되었다. 앞으로 더 큰 폭으로 실험이 확대될 것이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흐르는 시간 앞에 봄눈처럼 녹아내릴 것이다.

 우리는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다. 아직 통일되지 못한 국가들도 많다. 통일되었다가 다시 분단된 국가들도 많다. 사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경우는 민족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통일되어야 할 국가에 가깝다. 대만과 중국본토의 경우에도 민족적으로 통일되어야 할 국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통일도 하고 분단도 된다.

 과거에 새 왕조가 출현하면 주변 부족들과 혼인을 했다. 혼인만이 통일의 보증수표였다. 한반도의 통일도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어야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이동이 가능해야 한다.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이면 가능하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다.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라면 북한주민들 누구나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통일은 돈 뿌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