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일부터 평양에서 아동학대의 산물, ‘아리랑’이 막을 올리게 된다.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도 2일 ‘아리랑 공연’ 준비가 마감단계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선보이게 될 아리랑에는 기존의 프로그램에 ‘강선의 봉화’라는 항목이 더 추가되어 지난해 말 강선제강소를 찾은 김정일의 경제지도 업적을 찬양할 것으로 보인다.

 

고 김일성 생일 90돌인 2002년부터 매년 진행된 ‘아리랑’은 외국인들을 유치해 외화를 벌고, 북한 주민들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행사다.

 

김정일도 “아리랑은 주체문화예술의 대성공작이며, 후세에 길이 전할 귀중한 국보”라고 치하하고 매년 벌이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올해도 아리랑 공연에 외국인들을 유치할 목적 아래 해외주재 북한 공관과 상사원 웹사이트를 통해 아리랑 공연 관람객 모집에 나서고 있다.

 

남한 사람들은 '아리랑' 공연의 뒷면에 그 훈련에 참가한 어린이들의 피눈물이 얼마나 깃들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그토록 자랑하는 그 화려한 ‘아리랑 공연’에 어떤 피눈물 나는 사연이 있을까,

 

행사 준비에 동원됐던 아이들은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 소변을 보지 못해 방광염에 걸리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배경대(카드섹션)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매일 6~7kg이나 되는 카드를 메고 다녀야 하고 자리에 앉은 다음 소변을 볼 시간을 주지 않아 깡통(캔)이나 병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공연이 진행되는 '5.1일 경기장'안에 화장실이 있기는 한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다보니 소변을 한번 보자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볼 수 있다. 그래서 집단체조 지도원들은 깡통이나 병을 가지고 다니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거기다 보라고 요구한다.

 

어떤때는 소변을 많이 본다고 국을 주지 않고 훈련 시킬때도 있다. 배경대에 앉은 아이들은 카드를 한 장 잘 못 뒤져도 훈련 지도원에게서 매를 맞아야 하고, 특히 김일성 김정일의 얼굴 부분을 맡은 학생들은 긴장해야 한다.

 

언제인가 김일성의 얼굴을 맡은 한 학생이 행사 도중 너무 피곤해 카드 한 장을 잘 못 번져 얼굴에 검은 점을 낸 적이 있는데, 그 학생은 비판을 받고 평양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근 6개월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뙤약볕 아래서 훈련하다 더위를 먹고 무더기로 스러지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또 어떤 학생은 어머니가 사망해서 장례를 치러야 했지만,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아리랑 훈련에 나왔다.


그 가운데서 학생들이 제일 아쉬운 것은 공부를 못하는 것이다. 아리랑 공연은 보통 3월에 시작해서 10월~11월에야 끝나게 된다.

 

학생들은 3월부터 5월까지는 오전에만 공부하고 오후에는 전문 훈련을 하게 된다. 그러나 5월에 들어서면 모내기 전투에 동원되지 않고 행사때까지 하루종일 훈련하게 된다.

 

그리고 11월에 아리랑 공연이 끝나면 겨울방학도 없이 하루에 10시간씩 무더기로 수업을 받는다. 너무 피곤한 학생들은 수업을 이해도 하지 못하고 대충 넘겨서 졸업을 하게 된다.

 

하긴 북한도 아리랑 공연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공부하기를 바래지도 않는다. 적당히 졸업시켜서 군대 내보내면 끝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10년간 군대복무를 하게 된다.

 

공부를 잘하거나 힘이 있는 부모의 자식들은 제1고등중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킨다. 결국 힘이 없거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아리랑 공연에 참가하게 된다. 북한은 이렇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위해 구역마다 1고등중학교를 더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아리랑 훈련에 참가한 학생들은 행사에 김정일이 나오지 않으면 실망이 크다. 2005년 김정일이 공연을 관람했을 때 매 사람당 닭고기 2마리와 사탕 2kg을 주었다. 김정일이 안 나오면 그나마 선물이 없기 때문이다.

 

행사가 완전히 끝나면 김정일의 명함이 새겨진 천연색 텔레비전(컬러TV)이나 전기 재봉기가 1대씩 선물로 받는다. 그 선물에는 김정일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아무리 가족이 추방되어 재산몰수를 당해도 그것 만은 다치지 못한다.

 

나도 평양에 있을 때는 아리랑 공연에 참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한국에 나와보니 수령우상화를 위해 북한이 얼마나 학생들을 혹사시키는지 잘 알게 됐다.

 

 

평양출신 탈북자 김형덕(가명. 2007년 입국)